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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유림들의 호국충절이 서린 덕충동 '삼황묘(三皇廟)'
여수 유림들의 호국충절이 서린 덕충동 '삼황묘(三皇廟)'
  • 방길자
  • 승인 2020.05.2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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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암도서관을 가다보면 정문 바로 앞에 '삼황묘(三皇廟)'라는 사당이 보인다. 삼황묘란 말 그대로 세 명의 황제를 모시는 사당이라는 뜻이다. 이곳 삼황묘는 조선시대 태조, 고종, 순종을 모시는 사당이다.

삼황묘는 예전에 문수동 원앙아파트 뒤편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2006년 삼황묘 자리에 대주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자 충민사(사적 제381) 앞의 현 위치(여수시 덕충동 1909번지, 충민사길 40)로 옮겨 세워졌다.

사당입구의 비석군에는 삼황묘창건사적비, 삼황묘중수비, 삼황묘이전사적비 등의 비석이 있다. 1927년 여수 지역 유림이 삼황묘(三皇廟)를 창건하였을 때 함께 세운 비석들이다. '삼황묘 창건사적비(三皇廟創建事蹟碑)'에는 삼황묘를 세우면서 모금한 내력 등 창건과 관련된 상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1926년 순종 황제 장례식 때 여수 유림 대표 정충섭, 정영민, 최석주, 최봉삼 4인은 50여 명의 유림을 규합, 여수 유림 조선통곡단을 결성하고 열차편으로 상경하려 했다. 그러나 일제 관원에 의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은밀히 야간 선박편으로 부산을 거쳐 순종 황제 장례식에 참가했다. 이에 전국 유림은 여수 유림의 충정을 높이 칭송하였으며, 정영민, 최석주, 최봉삼은 여수 삼군자라 칭해졌다.

정영민, 최석주, 최봉삼은 귀향 후 향내 유림들을 설득해 태조 고황제, 고종 태황제, 순종 효황제의 유덕을 숭모하고 민족 정신을 고양하기 위해 문수동 고락산 기슭에 사우(삼황묘)를 창건하고 제를 모셨다. 이후 다시 삼황묘 동쪽에 행각을 세워 면암 최익현과 안중근 의사를 배향했다. 일제 당시 외삼문에 새긴 태극 무늬가 문제가 되어 태극을 새긴 강진영은 일제 탄압을 피해 멀리 피신하였다.

1939년 일제는 삼황묘를 강제로 철거하고, 정명민, 최석주, 최봉삼 등을 투옥했다. 해방이 되고 1947년 강진영, 최영모, 정기로가 중심이 되어 삼황묘를 다시 세웠다.

한편 여수지역 유림들은 1926년부터 일제에 대한 저항 정신을 담아 태조, 고종, 순종을 추모하는 '삼황묘 석전제'를 매년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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