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와도 답사는 진행한다는 문자에 우산에 비옷까지 단단히 준비하고 일찍 길을 나섰다.
여수시 교육지원과에서는 시민과 공무원을 대상으로, 분기별로 여수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이 벌써 18.19기이다. 한 기수에 8회 수업이 있는데, 이 중 3회가 현지 답사이다.
이번은 '근현대사 및 의병사'에 관한 답사다.
많은 걸 느끼고 무심코 지나다니던 곳이 우리 여수와 나라를 위해 활동했던 의병들의 유적지란 걸 알아 가며, 조상님들에 대한 애국심과 용기에 새삼 고개가 숙여졌다.
소호동과 돌산, 화양면 고진의 목장성(곡화목장), 소라면 화련마을 등을 답사했다.
여수 사람들이라면 잘 알고 있는 ‘용문사’에 관한 유래와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여수의 유적을 그냥 넘길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가시리로 향했다.
또 관기에서 고뢰(다까세)농장을 만들어 농지를 넓혀 우리 백성의 노동을 착취한 왜놈들에 대한 원망을 새삼 일깨우며 죽림을 지나 덕양으로 향했다.
한 곳도 쉽게 넘길 수 없이 감동이 밀려왔다.
밤율 자를 지명으로 쓸 만큼 밤이 많은 율촌을 지나며, 관리의 세금 때문에 밤나무를 다 베어 버린 조상님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더욱 씁쓸했다.
율촌 산수리 마을에 왕 바위재 라는 곳을 가기 위해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올랐다.
집채만한 바위가 한 곳을 향해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이것이 옛날 무덤인 고인돌이라고 한다.
도무지 지금의 상식으로 믿어지지 않을 너무 큰 바위들이었다.
요즘처럼 크레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저런 바위를 옮길 기술이나 기계 도구 또한 없었을 텐데, 어떻게 저런 바위를 옮겨 시신을 묻었을까 하는 많은 질문이 나왔다.
그러나 강사님의 대답에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고인돌인 건 확실하다. 아래쪽 깊이 살펴보니 분명 한문들이 있었고, 그 또한 고인돌임이 분명하다는 증거에 대해 여러 가지 말씀해 주셨다.
자랑스러웠던 것은 이 고인돌이 세계에서 가장 큰 고인돌이며, 우리 여수 율촌 큰 바위재에 있다는 사실이다.
함께 답사한 모든 도반들도 함께 놀라며 자랑스러워 하는 기색이다.
그 옛날에 저런 고인돌을 옮기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인력이 동원되고 재력 또한 얼마나 만만찮게 들었을까, 그리고 시일은 얼마나 걸렸을까 생각하니, 내 고장 여수가 분명 중요하고 풍요로운 고장이었던 것 같다.
율촌을 돌아 시청 앞으로 돌아 오는 동안 왕바위에 대한 이야기꽃은 끝나지 않았다.
왕바위 고인돌을 만들 때처럼 우리 여수가 최고의 번영기가 다시 한 번 오기를 기대해본다.
오늘 답사는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 좋은 행사였다.
필자에게 바람이 있다면, 여수 시민들의 대다수가 여수학을 공부해, 최소한 보석같은 내 고장의 유래나 유적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후손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조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