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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바위재'를 아시나요?

  • 기자명 이선심 기자 (ssl0357@hanmail.net)
  • 조회수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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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학은 내 고장 여수의 숨은 보석을 찾아 놀라게 해준다.

비가 와도 답사는 진행한다는 문자에 우산에 비옷까지 단단히 준비하고 일찍 길을 나섰다.

여수시 교육지원과에서는 시민과 공무원을 대상으로, 분기별로 여수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이 벌써 18.19기이다. 한 기수에 8회 수업이 있는데, 이 중 3회가 현지 답사이다.

이번은 '근현대사 및 의병사'에 관한 답사다.

많은 걸 느끼고 무심코 지나다니던 곳이 우리 여수와 나라를 위해 활동했던 의병들의 유적지란 걸 알아 가며, 조상님들에 대한 애국심과 용기에 새삼 고개가 숙여졌다.

소호동과 돌산, 화양면 고진의 목장성(곡화목장), 소라면 화련마을 등을 답사했다.

여수 사람들이라면 잘 알고 있는 용문사에 관한 유래와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여수의 유적을 그냥 넘길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가시리로 향했다.

또 관기에서 고뢰(다까세)농장을 만들어 농지를 넓혀 우리 백성의 노동을 착취한 왜놈들에 대한 원망을 새삼 일깨우며 죽림을 지나 덕양으로 향했다.

한 곳도 쉽게 넘길 수 없이 감동이 밀려왔다.

 

밤율 자를 지명으로 쓸 만큼 밤이 많은 율촌을 지나며, 관리의 세금 때문에 밤나무를 다 베어 버린 조상님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더욱 씁쓸했다.

율촌 산수리 마을에 왕 바위재 라는 곳을 가기 위해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올랐다.

집채만한 바위가 한 곳을 향해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이것이 옛날 무덤인 고인돌이라고 한다.

도무지 지금의 상식으로 믿어지지 않을 너무 큰 바위들이었다.

요즘처럼 크레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저런 바위를 옮길 기술이나 기계 도구 또한 없었을 텐데, 어떻게 저런 바위를 옮겨 시신을 묻었을까 하는 많은 질문이 나왔다.

그러나 강사님의 대답에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고인돌인 건 확실하다. 아래쪽 깊이 살펴보니 분명 한문들이 있었고, 그 또한 고인돌임이 분명하다는 증거에 대해 여러 가지 말씀해 주셨다.

자랑스러웠던 것은 이 고인돌이 세계에서 가장 큰 고인돌이며,  우리 여수 율촌 큰 바위재에 있다는 사실이다.

함께 답사한 모든 도반들도 함께 놀라며 자랑스러워 하는 기색이다.

그 옛날에 저런 고인돌을 옮기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인력이 동원되고 재력 또한 얼마나 만만찮게 들었을까, 그리고 시일은 얼마나 걸렸을까 생각하니, 내 고장 여수가 분명 중요하고 풍요로운 고장이었던 것 같다.

율촌을 돌아 시청 앞으로 돌아 오는 동안 왕바위에 대한 이야기꽃은 끝나지 않았다. 

왕바위 고인돌을 만들 때처럼 우리 여수가 최고의 번영기가 다시 한 번 오기를 기대해본다.

오늘 답사는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 좋은 행사였다.

필자에게 바람이 있다면, 여수 시민들의 대다수가 여수학을 공부해, 최소한 보석같은 내 고장의 유래나 유적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후손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조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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