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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의 선집, ‘새벽에 홀로 깨어’를 읽고

  • 기자명 조미숙 기자 (mycho304@hanmail.net)
  • 조회수 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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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의 선집을 읽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지난해 마음에만 두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다짐을 실천하고자 책 한권을 골라보았다. 학교 역사시험을 준비하며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외웠던 최치원의 계원필경은 아직도 기억에 오래 남아 있다.

최치원(857~ ?)은 신라시대를 대표하는 뛰어난 문인이며 학자, 사상가로서 신라말기 최고의 지성인이다. 그는 12세의 어린나이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빈공과에 합격하며 관료생활을 시작했다. 신라로 귀국 후 최치원은 골품제도 개혁을 위해 진성여왕에게 시무 십조를 지어 올렸으나 진골 세력 등의 반발로 실현되지 못했다. 이에 좌절한 그는 세상을 등지고 은둔으로 여생을 보냈다. 최치원은 정치적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시대와 타협하지 않고 양심을 지킨 올곧은 선비였으며, 그의 학문은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났다. 그 예로 당나라 희종 때 민란을 일으킨 황소에게 항복을 권유하고자 보낸 토황소격문이 있다. ' 천하의 모든 사람이 너를 죽이고 싶어 할 뿐만 아니라 땅의 귀신들도 너를 죽이고자 의논하였을 터이다' 라는 대목에 이르러 황소가 혼비백산하여 자기도 모르게 침상에서 떨어졌다고 하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 최치원 선집에서 인용)
 

최치원의 선집 중에서 작품 한편을 소개한다.


곧은 길 가려거든 

어려운 때 정좌 (正坐) 한 채 장부 못됨을 한탄하나니

나쁜 세상 만난 걸 어찌하겠소

모두들 봄 꾀꼬리의 고운 소리만 사랑하고

가을 매 거친 영혼은 싫어들 하오

세파 속을 헤매면 웃음거리 될 뿐

곧은 길 가려거든 어리석어야 하지요

장한 뜻 세운들 얻다 말하고

세상사람 상대해서 무엇 하겠소

이 시는 당나라로 간 최치원이 25세 때인 881, 중국인 오첨에게 보낸 것이다. 당시 당나라는 지배세력의 횡포와 심한 기근과 황소의 난으로 불안정한 정세가 지속되었다. 나라의 관료로서 어지러운 세태에 대한 최치원의 심정이 잘 표현된 시라 생각한다.

최치원은 나라를 진정 위하는 마음으로 신라의 개혁을 시도했으나 기득권의 이익만 앞세우려는 관료들로 인해 큰 뜻을 펼칠 수 없었다. 비록 역사의 꽃을 피우지 못했지만 그의 남긴 작품들은 우리들 마음에 큰 빛을 발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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