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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시민을 울린 ‘평화의 소녀상’

  • 기자명 한선주 기자 (dutnakstp@hanmail.net)
  • 조회수 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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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기억을 선물한 여수 시민이 한 없이 자랑스러워.”

2017년 3월 1일 오후 2시, 여수 이순신 광장이 들썩였다.

어떤 이는 박수 쳤고, 또 어떤 이는 눈물을 닦았다. 귀여운 여수의 아이들이 합창했고, 애끓는 시 낭송도 울려 퍼졌다. 바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다.

여수시민은 작년 5개월에 걸친 소녀상 건립 모금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개인, 단체가 낸 순수 기부금이 무려 97,906,166원. 삼일절 98주년을 맞아 여수시민은 그들이 살고 있는 여수에 특별한 선물을 남겼다. 

일제강점기, 이 땅에 살던 조선인은 일본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황국신민(皇國臣民)서사를 매일 암송했다. 학교에서는 조선어 과목이 사라지고, 남학생은 일본 제국주의가 일으킨 전쟁 학도병으로 내몰렸다. 어린 소녀는 물론 젊은 여성까지 영문도 모른 체, 전쟁터마다 끌려 다니는 일본군 성노예가 되어야 했다. 그들은 참혹한 인권 말살 피해자로 살다 억울한 죽음을 맞았다. 지금 ‘나눔의 집’ 할머니들이 원하는 건, 일본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여성으로서의 명예회복이다.

꼭 다문 입술, 차가운 표정, 불끈 쥔 맨주먹. 불편해 보이는 맨발, 얇아 보이는 한복, 거칠게 잘려나간 짧은 머리카락, 어깨 위에 앉은 새, 소녀 뒤로 보이는 할머니 그림자. 그리고 나비. 모여든 사람들이 소녀상의 상징을 놓칠세라 읽어본다.

소녀상 양 옆에는 가슴을 후려치는 추모시가 세워져 있고, 뒤에는 빼곡히 적힌 기부자 명단 머릿돌이 있다. 자신의 이름을 찾던 한 시민이 낯익은 기부자 이름에 반가워한다. 추모시를 모두 읽고 가야 한다고, 주변 사람을 불러 모으는 시민도 있었다. 소녀상 옆 빈 의자에 아기를 앉히거나 딸 아이 사진을 찍기 위한 손놀림이 바쁘다. 어느새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포토존이 되버렸다.

필자 역시 빈 의자에 앉아봤다. 낮은 숨소리가 흐느낀다.

‘나의 명예를 찾아주세요. 나는 자발적 종군 위안부가 아닙니다. 나는 강제로 전쟁터에 끌려가 일본군 성노예(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UN인권위원회)로 인권을 유린당했습니다. 일본정부의 사과를 받아주세요. 당신이 기억해주세요.’

바람은 아직 차갑지만 봄은 달려 올 것이다.

우리는 또 2년 뒤, 100주년 삼일절을 어떻게 맞을까?

 

                   나도 한 때 누군가의 선물이었습니다.

                   나도 한 때 누군가의 꿈이었습니다.

                   잃어버린 나를 찾아주세요.

                   잃어버린 나의 집을 찾아주세요.' (소녀 곁에 앉다中 / 詩김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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