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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인지 설탕인지 찍어 먹어야 알았다’

  • 기자명 여우비 (dutnakstp@hanmail.net)
  • 조회수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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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시 성인문해교실의 위력

  ‘2013년 전국 성인문해 시화전에서 용주 문해교실 강춘자(74. 화양면 용주리) 교육부장관상 수상

‘2015년 호남 시화전에서 용주 문해교실 김우례(72) 최우수상 수상

이것은 모두 여수시에서 운영하는 성인문해 교실의 값진 결과다.

김OO (79)

 

 

어릴 적

할머니 다리에 누워

옛날얘기를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는데

우리 손주는

책을 가져와 읽어달라고 하니

무서워 죽겠다.

 말로 하는 이야기라면

손으로 하는 음식이라면

손주 놈이 해 달라는 대로 해줄 수 있으련만

  달려가 보듬어 안 고파도

  손주 놈 손에 들린

동화책이 무서워

부엌에서 나가질 못한다   

 ( 강춘자 무서운 손자’ 2013)

  

이 OO (76)

 

 

 

 

    벽장 속에 숨겨 둔

 가방 하나를

며느리에게

들키고 말았다.

  한글 배운다고

 말도 안 하고

아무도 모르게 공부를 했는데

아이고 들키고 말았네

  나이 먹고 공부하는 게

  너무 창피해

벽장 속에 숨겨 뒀는데

그 가방을 들키고 말았다.

  잘 들켜 버렸다.

  인자는 안 숨겨도 되것다.

 (김우례 벽장 속 내 가방’ 2015)

  누군가 내게 여수에 살면서 보람된 일이 있었냐고 물어본다면, 서슴지 않고 문해강사로 활동했던 기억이 제일 좋았다고 말한다. 공식적으로 20123월부터 11월까지 OOO주민센터에서 성인문해강사로 활동했다.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씩 평균연령 75세인 늦깎이 학생 앞에서 나는 어엿한 선생님이었다.

  주민센터 이 층 한쪽에 마련된 문해교실은 여느 교실풍경과도 같았다. 반장이 차렷, 경례를 외치면, 함께 인사를 나누고 그 날의 수업이 시작된다. 학생들의 열의는 대단해서 비가 많이 와도 날씨가 추워도 결석생이 없었다. 다리를 다쳐 장기 휴학생이던 72세 학생은 전화 안부에 고마워하며 주민센터의 높은 계단을 올라가지 못해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단지 결석하는 이유는 아프거나 노인일자리가 생겨서 잠시 쉴 때였다.

아래층 주민센터 동장님은 자주 올라오셔서 교통질서와 박람회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늦게 배움의 길에 들어선 학생들을 한없이 격려해주셨다.

  수업 시간은 매우 빨리 지나갔다. 숙제를 잘 해오는 모범생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학생도 있었다. 교과서 따라 읽기를 잘하다가도 혼자서는 애를 태웠다. 집에 가면 가르쳐 줄 사람이 없다고 수업 내내 읽어 달라고도 했다.

선생님, 우리가 너무 바보 같지요?”

목이 쉬어 물 마시는 나를 보며 넌지시 말을 건넨다.

받아쓰기 공책에 동그라미를 그렸더니 그 주름 많던 얼굴은 어디로 가버리고 기쁨에 찬 아이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커피 한 잔을 나누며 쉬는 시간에 한 마디씩 이야기를 꺼낸다.

며느리가 직장 다녀서 내가 살림을 살아요. 음식 준비할 때 제일 어려웠던 건 양념장에서 꺼낸 백색 알맹이가 설탕인지 소금인지 구분이 안 가는 거야. 그래서 매번 찍어 먹어봐야 구별했지. 그러나 이젠 글자 보고 구분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쁜지 몰라

순간 울컥했다. 그 고단함이 얼마나 컸을까?

이제는 은행에 혼자 간다고 자랑한다. 입출금표에 이름과 금액을 제대로 쓸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도 이야기한다.

 뒤늦은 한글 공부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저마다의 사정으로 이제 시작이지만 이분들에게 공부는 즐거움이며 남은 인생을 꽉꽉 채워줄 생명의 자양분이다.

  해마다 문해 교실 학생이 늘고 성과도 올리는 것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여수시에는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이도 살고 있구나.

나도 처지지 않게 항상 노력하며 겸손하게 살아야지.....’

  그런데 아직도 그 때 학생들이 다니고 있을까?’

간식이라도 사서 한 번 방문해야겠다.

 

끝으로 용주문해교실 최순길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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