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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시, 함께 기억하는 열린 공간 ‘여순사건 아카이브 구축’

  • 기자명 여수시 홍보담당관 (navvv33@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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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관련 각종 문헌 및 사료, 사건의 전개과정 등을 ‘한눈에’

지난 6월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 이후 여순사건에 대한 전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남 여수시가 여순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나섰다.

6일 여수시에 따르면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 후속조치 사업으로 여순사건 관련 각종 문헌 및 사료, 사건의 전개과정과 유적지 소개, 각종 사진과 영상 등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여순사건 아카이브홈페이지를 구축한다고 밝혔다.

여수시는 8월부터 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실무위원회를 구성하고 각종 사료수집과 가공 작업을 위한 사전 준비 작업에 착수한다.

1019일 제73주년 여순사건 희생자 합동추념식에 맞춰 여수시 홈페이지에서 시범 운영을 거친 뒤, 내년 상반기에 개선사항을 보완한 독립적인 여순사건 아카이브홈페이지를 구축해 전 국민에게 여순사건을 제대로 알 수 있는 창을 마련할 계획이다.

아카이브는 사건으로 보는 여순사건, 각종 미디어 자료, 역사 유적지 소개, 추모의 공간알림마당 등 총 5개의 콘텐츠로 구성할 계획이며, 특별법 제정 후속조치 사업과 내년 상반기부터 시작될 피해신고 접수 및 홍보에도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권오봉 여수시장은 여순사건 아카이브는 단순히 문헌과 사료를 미디어 기록으로 관리하는 차원을 넘어, 여순사건의 아픈 역사를 알리는 추모의 공간이자, 국민 모두가 새로운 기억을 남기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며 아카이브 구축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여순사건은 19481019일 여수시 신월동에 주둔한 제14연대 일부 군인이 제주43 진압 명령을 거부하며 일으킨 사건으로, 최초 발생지였던 여수시는 정부군에 의한 진압이 이루어지기까지 가장 많은 인적, 물적 피해를 입었다.

▲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전남 여수시 신월동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4‧3사건 진압명령을 반대하며 촉발됐다. 당시 희생자만 1만여 명이 넘는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이다.
▲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전남 여수시 신월동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4‧3사건 진압명령을 반대하며 촉발됐다. 당시 희생자만 1만여 명이 넘는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이다.
▲ 권오봉 여수시장이 여순사건 특별법 통과 다음 날인 6월 30일 오전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를 찾아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의 법안명 족자를 위령비 제단에 헌물하며 희생자의 넋을 달랬다.
▲ 권오봉 여수시장이 여순사건 특별법 통과 다음 날인 6월 30일 오전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를 찾아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의 법안명 족자를 위령비 제단에 헌물하며 희생자의 넋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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