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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섬, 묘도여행(창촌마을)

  • 기자명 방수윤 (suyun7762@naver.com)
  • 조회수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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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도(描島)의 역사는 2012 여수엑스포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

엑스포를 앞두고 개통된 묘도대교로 여수와 연결되고, 이순신대교로 광양과 연결되면서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묘도대교의 길이는 1,410m이며 너비 29.1m 왕복 4차선이다. 여수시 월내동 국가산업단지와 여수시 묘도 사이를 잇는 사장교로 GS건설에서 시공했다. 대교 중간에 목도라는 작은 섬이 있다.

묘도대교가 생기기 이전에는 마을에서 운영하는 도선을 타고 원내 선창에서 창몰 선창까지 건넌 다음 마을버스를 이용하여 각자의 집으로 가야했다.

아름답고 정겨운 섬 묘도에서의 추억을 기억하며 뚜벅이 여행에 나섰다.

묘도로 들어가는 길은 두가지다. 하나는 묘도대교를 막 건너서 이곳 창촌 마을로 진입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이순신대교 휴게소에서 묘읍이나 도독마을로 들어오는 길이 있다.

맨 먼저 도착한 마을은 창촌인데 묘도사람들은 창촌이라 쓰고 창몰이라고 부른다.

마을 안내판을 보니 입향조*는 1396년경 설씨가 입향하여 살아왔으나 자손이 많이 없어 창촌마을에 없으며 다른 곳으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남양 방씨, 청송 심씨 등이 입향한 후에 김해 김씨가 옮겨와 살고 있다.

* 입향조 : 어떤 마을에 맨 처음 들어와 터를 잡은 사람 또는 그 조상

창촌이란 지명은 임진왜란 7년 동안 창고 역할을 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충무공과 명나라 진린 도독이 이곳에 진을 치면서 육지로부터 가지고 온 군량미와 창, 칼 무기류 등을 현 묘도초등학교 부지에 창고를 만들어 보관했기 때문에 창촌이라고 불렀다.

묘도에서 생산되는 농산과 어패류, 건어물 등을 창고에 보관하고 여수 순천 등지로 수송한 입구이기 때문에 창촌이라 명명되었다는 사람들도 있다.

예전 같으면 어선들로 빼곡히 차 있어야할 선창가가 요즘 텅 비어 있다. 여수광양항 항로개설로 바다에서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선창에 서면 소가 누워 있는 형국의 우순도와 바로 인근에 전설 속의 쥐섬이 잡힐 듯 가까이 있었다. 몇 년 전부턴가 섬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굴뚝들이 서있다. 고개를 좌로 돌리니 묘도대교의 모습이 웅장하다.

자동차로 저 다리를 건너는데 3분이면 충분한데.... 그땐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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