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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역사] 화양면 화동고인돌&곡화목관 선정비

  • 기자명 방수윤 (suyun7762@naver.com)
  • 조회수 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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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면 화동리 화양고등학교 정문 앞에는 고인돌 26기와 조선후기 곡화목관 감목관을 지낸 8인의 선정비가 모여 있다.

청동기시대의 무덤인 고인돌은 좁은 공간에 26기가 모여 있으며, 상석 중 2기는 상면에 선정비가 음각되어 있다.

곡화목관은 조선 전기에 설치되어 말을 길렀던 목장으로, 곡화목장 또는 백야곶목장(백야곶목관)이라고도 불렸다.

3인의 선정비는 각각의 비석으로 세워져 있고, 5인의 선정비는 2기의 고인돌 덮개돌(상석)에 새겨져 있는데, 상석 1기에는 선정비 2기가 새겨져 있고, 다른 상석 1기에는 선정비 3기가 음각되어 있다.

선정비는 1833(순조 33) 건립된 '감목관 구준원 구민선정비', 높이 130·40규모이다. 다른 선정비는 1854(철종 5) 건립된 '감목관 김 선정비', 이름 한 글자를 판별할 수 없다. 또 다른 선정비는 '종염(宗琰)'이라는 이름과 '선정비(善政碑)'라는 글자만 알아볼 수 있다.

오래되지 않은 비석들임에도 훼손 정도가 심한 것은 감목관들의 횡포로 선정비를 악정비(惡政碑)로 여기는 주민들이 비석을 훼손시켰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고 마을 사람들의 쉼터나 놀이터로 이용되어서 훼손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인돌 상석에 '감목관 김시좌 선정비', '감목관 송유식 선정비', '감목관 정현 선정비'라고 새겨져 있다.

고인돌 상석에 '감목관 윤동계 선정비', '감목관 신 선정비'라고 새겨져 있다. 고인돌 비석들은 모두 1838(헌종 4)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공통으로 가로 40·세로 110의 테두리를 조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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