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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역사 기행 2] 여순사건의 아픔이 서린 '인구부 전투지'
[여수역사 기행 2] 여순사건의 아픔이 서린 '인구부 전투지'
  • 방수윤
  • 승인 2020.04.17 0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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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등천의 유채꽃 향기를 즐기며 '안숙 사적비'에서 조금 더 걸으니 도로변에 인구부 전투지란 표지판이 보인다.

인구부전투(또는 미평전투)는 종고산 기슭의 인구부(지금의 연등동 소방서에서 중앙여고 사이)지역에서 발생했다.

여수의 근현대사의 시대적 아픔인 여순사건의 한이 서린 격전지이다.

2010년 이뤄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를 통해 군이 순천지역 민간인 438명을 무리하게 연행해 살해했고, 순천 지역만 2000여명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여순사건 특별법은 제16·18·19대 국회에서 발의되어 임기만료로 폐기됐으며,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으나 현재 계류 중으로 사실상 폐기된 상태다.

다음은 인구부전투지에 세워진 안내판의 내용이다.

인구부전투지

왼쪽으로 구부러진 지형 때문에 인구부라 이름하는 이곳은, 여순사건이 일어난 후 19481024일 진압군과 14연대 일부 군인 및 지방 좌익간의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됐던 대표적 격전지다.

당시 반군토벌전투사령부 총사령관이었던 송호성 준장이 지방 좌익에게 저격당해 차에서 떨어지며 부상을 당하는 등, 진압군 대열이 무너지며 후퇴한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전투에서 24일 송호성 사령관의 장갑차 대열은 시내 중심부인 충무동 미곡창고(전 시민극장 자리) 앞까지 깊숙이 진격해 왔다가, 인구부의 협곡능선에 매복해 있던 14연대 일부 군인과 지방 좌익 무장대에게 기습을 당하는 등, 완강한 저항을 받아 여수탈환작전에 실패를 거듭하였다. 이 과정에서 14연대 일부 군인 등은 야음을 틈타 묘도방면을 거쳐 광양 백운산으로 입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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