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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절의 고장, 여수의 500년 역사를 담은 오충사(五忠祠)

  • 기자명 방수윤 (suyun7762@naver.com)
  • 조회수 1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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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때문에 봄꽃 여행은 커녕, 외출조차도 망설여지는 요즘입니다.

이럴 때는 가깝고 한적한 공원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데요. 아이들과 함께 웅천동 오충사에 오시면, 고스란히 남아있는 여수의 500년 역사의 숨결을 느끼고 공부하실 수 있습니다.

오충사(五忠祠)

오충사(五忠祠)는 여수시 향토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으며 여수시 웅천로 354에 있습니다.

오충사는 임진왜란(1592년~1598년) 정유재란(1597년) 때 나라를 구하기 위해 공을 세운 충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사당입니다. 이 사당에는 충무공 이순신과 압해 정(丁)씨 창원파 문중의 충절공 정철, 충의공 정춘, 충숙공 정린, 충정공 정대수를 모시고 있습니다.

오충사는 여수시 선원동 가곡마을에 건립되었던 '가곡서원'으로부터 기원했습니다.

정철은 임진왜란 중 큰 공을 세우고 부산포 해전에서 전사했습니다. 조선 조정에서는 정철의 공을 인정해 충절공이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이후 1826(순조 26) 4월 경, 성균관과 순천 향교 유림들에 의해 사당 건립 여론이 형성됐습니다. 그 해 7~8월에 전라도 향교(광주, 나주, 전주, 남원향교 등) 유림들이 중심이 되어 가곡서원 건립의 기반을 만들게 됐습니다.

이어 1847(헌종 13) 전라도 유림들이 국왕에게 요청을 올려 가곡서원이 건립됐습니다. 이후 사충사를 함께 세워 임진왜란에서 활약한 4명의 충신(정철, 정춘, 정린, 정대수)을 모시게 됐습니다.

그런데 사충사는 1868(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인해 가곡서원과 함께 헐리게 됐습니다. 이후 이 사당을 19238월 압해 정씨 창원파 문중과 유림 향민들이 지금의 위치에 옮겨 세웠습니다. 이 충무공을 함께 모시고 오충사 편액(扁額)을 걸었습니다.

이후 일제 강점기였던 1938년, 일본 경찰에 의해 사당이 강제로 철거되면서 사중 재산까지 몰수당했습니다. 1962년 지금의 위치에 추모하는 마음으로 다시 세워졌습니다. 1976년 한 차례 보수했습니다.

나라에 충성하는 마음으로 나라를 지키다 순국한 다섯 충신을 찬양하고 기리기 위해, 여수 지역 유림들과 이 충무공 유적 영구 보존회가 향민들과 같이 매년 음력 316일과 916일에 석채례를 봉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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