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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 가는 유적지 '여수석보' 를 아십니까

  • 기자명 김미선 (beautysu@naver.com)
  • 조회수 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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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시는 최근 시립박물관 부지로 석보터를 확정하고 전남도, 문화체육관광부 등과 사전 협의를 마무리했다고 8일 밝혔다' 

'여수시립박물관 건립 추진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여수시가 시립박물관 건립부지로 '여수석보' 터 로 결정한 것에 시의회가 제동을 걸었다.'

 

 1월 여수시립박물관에 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여수석보'에 다녀왔다.

흔한 이정표도 없어 네비에 의존해서 찾아갈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입구안내도 없어 여기저기 기웃기웃 거려서 살짝 열려있는 철조망 사이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낡은 여수석보 안내판 ⓒ김미선

 

여수석보성은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튀어나온 반도지형으로서 남해안과 순천 등 내륙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로가 만나는 결절점에 위치하고 있는 군사 · 교통의 요충지에 입지하고 있다.

사적 제523호로 고려 충정왕이 처음으로 여수진(麗水鎭)을 설치하고, 돌로 성을 쌓아 창고를 지은 곳으로 전해온다.

평지에 네모꼴로 축조된 석축의 평지성이다. 현재는 여천동 여수-순천, 여수시가지-여수산단 등을 연결하는 석창 사거리에 있다.

해안가의 평평한 지역에 돌로 쌓아 육군들이 방어하던 진보(각 지방을 지키던 군사들이 주둔하던 작은 규모의 성)의 기능을 담당한 성이다.

1454년(단종 2) 이후 1457년(세조 3) 정월 사이에 축조되었으며, 1522년(중종 17) 돌산진에 흡수되면서 폐지되고, 관청용 물자를 보관하는 석창과 지방 장시로 기능이 변화되면서 사용되었다.

성벽의 길이 약 705m, 너비 5.7m이다. 부속 시설물로는 성문 3개, 성문과 옹성을 공격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성안에 높이 대를 쌓아 만든 시설인 적대 1개, 해자, 연못, 건물지 10여개소가 있다.

현재도 둘레 703m, 높이 3∼4m의 사각형 성벽이 남아 있다.

 

'여수 석보'터는 지난해 11월 8일 열린 박물관 건립 공청회에서 후보지로 거론됐다.

여수시는 '여수 석보'터가 여수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잘 반영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박물관 건립 부지로 확정했으나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은 이유로 논란이 되고 있다.

현재 여수석보는 로1987년 1월 15일 전라남도기념물 제106호로 지정된 후, 2012년 6월 22일 사적 제523호로 승격되었다. '석창성지(石倉城址)'로 불리다가 사적 지정과 함께 현재의 명칭으로

통일되었다. 2차례의 발굴조사와 학술대회 등을 통하여 유적의 성격을 확인하였다.

 

그것 뿐이었다.

 

관리 아니 방치가 되어 이곳이 사적지 인지 그저 허허벌판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안내판은 그저 하얀색이었고 풀들이 너무 많아 걷기에도 쉽지 않은 길이었다.

뭐라고 씌어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비석에는 세월의 흔적만이 가득했다.

 

관리주체인 여수시에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인 관리를 해야 할 것으로 보였다.

차가운 바람에 시려진 마음만큼이나 이곳을 보는 나의 맘이 너무나 아팠다. 하얀 도화지 같은 안내판들이 즐비해 있는 모습을 보니 그저 안타까움의 탄식만이 나온다.

문화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가꾸고 사랑해주는 여수시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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