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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순사건에 대한 재조명과 현주소
여· 순사건에 대한 재조명과 현주소
  • 김가람
  • 승인 2019.01.28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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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 사건이란,

제주 4 · 3 사건 함께 해방 후의 소용돌이 속에서 좌익과 우익의 대립으로 빚어진 민족사의 비극적 사건이다.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민중 봉기가 일어났다. 군과 경찰이 민중 봉기를 강경 진압하자, 봉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한라산으로 들어가 저항했다.

이승만 정부는 1948년 10월에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 제14연대를 제주 4 · 3 사건 진압을 위해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제14연대의 일부 군인들은 제주 4 · 3 사건 진압 출동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친일파 처벌과 남북 통일 등을 주장하며 들고일어나 여수와 순천을 장악한 뒤, 주변 지역으로 세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여수와 순천 일대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미군사 고문단의 협조 아래 반란군을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반란군은 물론이고 많은 민간인이 죽거나 다치는 비극이 일어났다. 이승만 정부는 이를 계기로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강력한 반공정책으로 반공국가를 구축하였다.

당시 흔히 여순반란사건이라고 하였으나, 해당 지역 주민들이 반란의 주체라고 오인할 소지가 있다고 하여 1995년부터는 '여수·순천사건' 또는 '여수·순천 10·19사건'이라고 사용하기로 하였다.

  • 여순 사건의 현주소

2008년 여수시에서는 여순사건 당시 부역 혐의자로 잡혀 있던 종산 국민학교(현재 중앙초등학교) 수용자 중 민간인 수백명이 떼죽음 당했던 곳인 만성리에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비와 묘를 세웠다.

위치로는 마래터널 입구 쪽이며, 도로명 주소는 전라남도 여수시 망양로 141 이다.

여순사건 만성리 희생지
여순사건 만성리 희생지

여순사건 만성리 희생지에는 간단한 설명과 위령비가 있었다.

 

여순사건 만성리 희생자에 대한 위령비
여순사건 만성리 희생자에 대한 위령비

또한 위령비 근처에 여순사건의 부역혐의자로 수용되었던 사람들이 희생됐던 곳에 유족들이 묘를 세워둔 곳이 있었다. 이곳은 이름은 '형제묘'로, 희생된 시신들을 찾을 길이 없던 유족들이 죽어서라도 형제처럼 함께 있으라고 한 곳이었다.  

여순사건 형제묘
여순사건 형제묘
여순사건 형제묘
여순사건 형제묘
여순사건 형제묘
여순사건 형제묘

2019년 현재,

전남 여수시의회 여순사건특별위원회는 23일부터 이틀간 여순사건의 계기인 제주도를 찾아 4ㆍ3특별위원회와 제주4ㆍ3특별법 제정 경과와 추모사업 사례 등을 면밀히 살피고 여순사건특별법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 등을 논의했다. 그리고 오는 29일과 30일에는 여순사건특별법의 조속한 제정 촉구를 위해 국회를 방문할 예정이다.

또한 여수시에서는 선사 시대와 임진왜란을 거쳐 여순사건, 여수산단 등 여수의 근현대 역사를 조망할 수 있는 종합박물관 건립을 준비하고 있다. 시립 박물관 건립을 통해 여수의 역사성을 볼 수 있게 되는 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1948년에 일어난 여순 사건은 이념과 권력에 의해 일어난 비극적이도 가슴 아픈 우리들의 역사적 사실이다.여순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올바르게 알며, 다시는 이런 가슴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알리는 것 또한 우리들의 중요한 임무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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