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거북선축제가 성대히 개최됐다.
필자도 통제영 길놀이를 보러 갔는데, 첫째는 아들이 소동줄놀이에 참가하는 걸 보기 위해서이다.
6학년이다 보니까, 이번이 초등학교 시절 마지막 참가가 된다.
여수의 전래 민속놀이인데, 아들은 그걸 알고서 하는 게 아니었다고 했다.
하지만 씩씩하게 노래를 외치면서 걷고, 또 장기자랑으로 태권도나 춤을 보여 주는 아이들도 있어 아주 흐뭇했다.
둘째는 전라좌수영 출정행사를 자세히 보기 위해서이다.
일본인으로서는 임진왜란에 관한 행사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마음 편히 볼 수 없는 게 있다.
미안함과 전쟁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다.
내용도 어렵지만, 그럼에도 한 번은 잘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입방군점고에서는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가 압권이었다.
둑제는 이 땅의 안위를 바라고, 지키는 병사들도 무사하기를 기원하는 그런 마음이 느껴졌다.
점점 해가 질 시간이 되고 바람이 강하게 부는 가운데 통제영 길놀이가 시작됐다.
몇년째 구경하다 보니 거의 내용이 같은 걸 알지만, 역시 어느 팀 할 것 없이 멋지다.
행진하는 사람들은 씩씩하게 또 관객들도 환호하며 응원하는 모습이 기분이 좋다.
무려 50개가 넘는 팀이 행진을 하기 위해 모여, 끝을 알 수가 없었다.
길놀이가 영영 계속될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매년 다문화가족들도 자기 나라 전통의상을 입고 행진에 참여한다.
들은 바로는 항상 순서가 뒤쪽이었다고 한다.
베트남, 태국 같은 나라 의상은 소매가 없거나 얇아서 저녁에 다니기가 너무 힘들 것 같아 항상 걱정했는데, 이번에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요청으로 조금 일찍 출발하게 됐다고 한다.
조금이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본팀도 그 자리에 있었다.
이제 3번째 축제에 참여하는 마에다 유미꼬 씨도 역시 슬픈 역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서 처음에는 가볍게 ‘핫피’를 입고 행진했다고 한다.
농담 삼아 돌을 던지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닌가, 걱정도 했다고.
2번째 때는 “콘니치와~!”라고 환호해주는 관객이 있어 기뻐서, 이번에는 당당히 기모노인 ‘후리소데’를 입고 행진했다.
관객들이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에 감사하고 행복했다고 한다.
필자는 이제 한국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말하자면 일본산 여수시민이다.
이렇게 큰 행사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럽다.
※ 본 기사는 여수시가 올해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외국인 기자단의 '다나까 도모요' 기자님이 작성한 글로, 번역 등에 있어 다소 미흡한 점이 있을 수 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今年も亀甲船祝祭が盛大に開催された。
筆者は今年も統制営キルノリを見に行ったのだが、一番は息子が小童紐遊び(ソドンチュルノリ)に参加するのを見るためだ。6年生になるので今回が最後の参加になる。麗水の伝来の民俗遊戯なのだが、息子はそれを知らなかったと言った。しかし、たくましく歌を歌いながら歩き、また 十八番で太極拳や踊りを見せる子供たちがいて とても微笑ましかった。
二番目は全羅左水営の出征行事をよく見るためだ。日本人としては文禄の役に関する行事なので、どうしても心安らかに見ることが出来ないところがある。遺憾と戦争に対して残念な気持ちがある。内容が難しくもあるけれど、一度はちゃんと見なければと思った。
入防軍点呼では役者たちの見事な演技が圧倒的だった。纛(トク)祭[軍神を象徴する旗であるトクの前でする祭事]は、この地の安寧を願い、守る兵士たちも無事であるようにと願う そんな心が感じられた。
少しずつ日が沈む時間になり、風が強く吹く中で統制営キルノリが始まった。
何年か見物するのでほとんど内容が同じなのが分かるが、やはりどのチームが一番と言えないほどかっこいい。行進する人々はりりしく、また観客たちも歓呼し応援する姿が気分がいい。なんと50を越えるチームが行進のために集まり、列は終りを知らなかった。キルノリが永遠に続くような錯覚を覚えるくらいだった。
毎年多文化家族たちも自身の国の伝統衣装を着て行進に参加する。聞いたところでは、いつも順序が後ろの方だったという。ベトナム、タイなどの国の服は袖が無かったり薄くて、夜に往来するにはとても寒くてしんどいだろうといつも心配していたのだが、今回は多文化家族支援センターの要請で、少し早めに出発するようになったという。ちょっとでも良かったと思った。
日本のチームもその場にいた。もう3度目、祝祭に参加する前田ゆみ子さんもまた、悲しい歴史を考えざるをえず、初めは簡単に法被を着て行進したという。冗談で、石を投げる人がいるのではと心配もしたと。2度目の時は、「こんにちは!」と歓呼してくれる観客がいてうれしくて、今回は堂々と振り袖を着て行進した。観客たちが手を振ってくれる姿に感謝で幸せだったと言った。
筆者は今はもう韓国に根を下ろし生きている、言うなれば日本産麗水市民だ。こんなに大きい行事を見物するだけでも誇らしいと思う。
※ この記事は、麗水市が 今年 試験的に 運営している 外国人市民記者団の'たなかともよ'記者が 作成した文で、翻訳に 多少 不十分な 点が あるかも しれないことを 了解を お願いし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