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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전라좌수영 옛 성곽길을 걷다

  • 기자명 이기자 기자 (-leegija20@hanmail.net)
  • 조회수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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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거슬러 조선시대로 가면 여수는 한양에서 보았을때 변방에 속했던 지역이다. 왜구의 침입이 잦아서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곳이었다. 당시 전라도 지역에 왜구의 침범이 더욱 빈번해지자 성종은 여수(당시 순천도호부 소속)에 전라좌도수군절도사 수영을 신설한다. '전라좌수영'은 전라좌도 해안 경비를 담당했던 당시의 군사기지라고 할 수 있다.

1479년(성종 10) 전라좌수영이 창설되자 전라좌수영성 축조와 함께 동헌을 비롯하여 관내 청사도 세워지기 시작한다. 지금은 유일하게 객사 진남관만이 남아 있어서 옛 규모를 짐작하기 힘들지만, 전라좌수영성은 창설 당시에 둘레가 1.7km나 되는 성터였다. 진남관 외 78개 동의 건물이 함께 있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컸다고 할 수 있다.

⧍당시의 전라좌수영성 모형도 ⓒ이기자
⧍당시의 전라좌수영성 모형도 ⓒ이기자

최근에 여수시가 진남관 보수작업과 전라좌수영 동헌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해서 현장을 찾았다. 2018. 04. 15(일) 전라좌수영 옛 성곽길을 따라 산책하면서 진남관 보수 현장과 동헌 발굴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노희구(전 여도중학교 교사)님의 성곽길 안내와 정희선 교수(청암대 문화관광과)의 동행으로 매우 흥미롭고 풍성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성곽길 걷기는 진남관 앞쪽 남문 터에서 출발해서 고소대와 동문 터를 지나고 동헌 발굴지를 본 후, 서문 터를 따라 돌아보고 내려오는 코스다. 출발지점에서 보도블럭 위에 동으로 만든 바닥 표지판이 있지만 성곽길 전체를 알 수 있는 적절한 동선 표식이 없어서 난감했다. 마음먹고 다시 성곽길을 걸어보려해도 안내자의 도움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성곽터로 추정되는 고소동 골목길을 따라 걸으니 성벽 문양의 벽화를 그릴 수 있는 빈 담벼락들이 보인다. 천사벽화마을 사업의 확장으로 성벽 벽화 그림을 그려서 표식으로 삼을 수 있고, 이것이 힘들다면 기본적인 동선 표시라도 있어야 한다. 보수를 끝낸 진남관과 앞으로 복원될 동헌 내 건물 8동의 위엄이 서려면 옛 성곽길 터를 바르게 살려내는 것이 필요하다.

 

⧍전라좌수영 서문 독다리와 해자 표시판 ⓒ이기자
⧍전라좌수영 서문 독다리와 해자 표시판 ⓒ이기자
⧍전라좌수영 서문터 표시판 ⓒ이기자
⧍전라좌수영 서문터 표시판 ⓒ이기자

해양공원과 종화동 일대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관광객들이 몰리고 있다. 그곳은 현대적인 즐길거리가 잘 갖추어진 곳이다. 반면 진남관 일대는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고소동이 자연스러운 연결고리가 되어서 전통의 예스러움을 살릴 수 있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필요한 시점이다. 현대와 고전의 멋스러운 공존, 좀더 디테일하게 전라좌수영 옛 성곽길을 바라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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