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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304호 ‘진남관’ 보수·정비사업 공개 현장을 찾아

  • 기자명 여우비 (dutnakst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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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이맘때, 대한민국은 발칵 뒤집어졌다. 전 세계 뉴스는 600년 된 한국의 국보 제1호가 불타고 있다고 요란을 떨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조선 전기 건축물 숭례문(국보 제1)은 방화로 인해 6시간 만에 전소되었고, 대한민국 국민의 자존심은 잿더미와 함께 날아가 버렸다. 숭례문 사건 이후 문화재가 있는 곳에는 CCTV가 설치되고 대대적인 방재 시설 점검이 이뤄졌다.

 

가설덧집 안으로 들어가기 전, 문화해설사가 진남관을 설명해주고 있다.

숭례문이 서울에서 가장 오랜된 목조건물이라면 여수에는 진남관이 있다.

13일 여수시는 진남관의 보수 정비사업 현장을 최초로 공개했다. 문화재 복원의 신뢰성과 안정성, 접근성을 고려해 매회 30명의 관람자를 사전 예약받았다. 안부가 궁금하던 차에 공개 첫 날, 가설덧집으로 포장된 진남관을 찾았다. 오전에 이어 오후 두 차례 현장 공개인데 참가자는 현장접수자 까지 30명을 웃돌았다.

국보 1호와 국보 304호란 번호는 단순히 등록, 관리 번호다. 보존할 가치의 높고 낮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진남관은 오관오포와 더불어 임진년 모든 전쟁을 총괄하고 군량미와 무기를 모았던 곳이기도 하다.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컸기에 1963년 보물 제324호로 지정된 이후 2001년 국보 제304호로 승격됐다.“

명호은 여수시 문화해설사의 설명은 명쾌했고 복원의 중요성도 되새겨졌다.

 

진남관 미니어쳐

진남관 모형물 앞에서 정면 15, 측면 5, 68개의 기둥을 세어 보는건 아이도 어른도 같았다.

한일강제합방 당시 일본은 한국의 문화재를 갑···정으로 나눴다. ‘·에 해당하는 것은 보존하라고 했고 ·을 받은 문화재는 보존 여부를 지역에 맡겼다. 조선의 모든 객사는 ·에 들어갔다. 남아있는 객사는 일본 사람들이 학교로 많이 썼다.”

진남관 옆 임란유물전시관에는 학교로 쓰인 진남관의 사진과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기와 한 장의 무게는 3.7kg이다.

진남관에는 모두 3만장의 기와가 쓰여져 111톤이나 된다. 기와가 무겁고 벽체가 사라져 기우러 졌다. 다음 달 기와는 완전히 걷어내게 된다.”

3층 관람실에는 유리벽 너머로 빽빽한 진남관의 지붕을 볼 수 있다. 오랜 세월 진남관을 가려준 기와가 새삼 놀랍고 대단하게 여겨졌다.

 

3층 유리창 너머 지붕이 보인다.

문화재는 곱게 놔두고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낡아서 무너질 것 같은 부분은 뜯어내고 보강해줘야 하고, 파손된 곳은 잘 다듬고 교체해 줘서 본래의 모습과 가치를 보존해가야 한다.

또한, 급하게 복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진남관의 안전 모니터링 결과 보수·정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201512월부터 보수공사가 시작됐다.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진남관은 2020년 공사가 완공될 예정이다. 하지만 기둥을 심고 땅을 팠더니 50센티 아래서 유물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작업을 중단하고 설계를 다시 하느라 1년을 기다렸다. 기둥과 기둥 사이 자국이나 고래 구멍을 찾아 유물이 나오면 또다시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조선의 객사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진남관.

복원을 통해 300년 만에 다시 태어날 진남관은 상상만 해도 가슴 벅차다.

아름다운 관광지 여수가 호남 제일의 호국충절의 도시란 역사적 의미도 더할 테니 말이다.

아프지 않고 건강한 진남관을 어서 만나고 싶다.

 

진남관 보수·정비사업 현장 공개 참가자는

여수시 홈페이지 OK통합예약(http://ok.yeosu.go.kr/)에서 예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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