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여수 하멜 전시관을 찾아서

  • 기자명 김영란 기자 (yacht8457@hanmail.net)
  • 조회수 1022
글씨크기

조선과 통하라! 코리아호의 출항

잔잔한 여수앞 바다에 햇살이 비추면 빨간 등대가 보이고 그 위로 갈매기가 난다. 마주보이는 돌산과 하늘을 나는 해상 케이블카의 함성이 들릴 듯 아름다운 여수. 낚시를 하는 사람들의 손놀림도 빨라지는 오후 한 때. 무언지 그리워 발길 닿은 곳이 하멜 전시관이다.

‘하멜표류기’로 알려진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은 스페르베르호를 타고 일본 나가사키로 항해를 하던 도중 태풍을 만나 1653년 8월 제주도에 표류하게 되었다.

당시 네델란드는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까지 전 세계를 상대로 무역을 하는 나라였다.

동인도회사의 상선인 스페르베르호는 유럽, 아시아를 다니면서 큰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그 배는 돛이 5개, 30여개의 대포를 갖춘 거대한 범선이었다. 스페르베르호에는 목향(한방약재), 명반(백반-염색, 의약품), 용뇌(용뇌향약재), 녹비(사슴의 가죽), 설탕...등을 싣고 장사를 하는 상선이었다.

폭풍을 만나 난파된 스페르베르호의 선원들이 나가사키로 가는 도중 제주도 바닷가에 도착, 64명중 36명이 살아 남았다. 하멜 등 생존자 36명은 14년간의 조선에 억류생활을 하였는데, 제주도에 표착하여 10개월간 감금되었으며, 다음 해인 1654년 5월에 서울로 호송되어 훈련도감의 군인으로 배속되기도 했다.

청나라 사신을 통해 탈출을 시도하였다가 발각되어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되었으며 7년 후 강진에 흉년이 들자 전라도 지방 여러 곳으로 분산 이송되었다.

전라도 여수로 이송된 하멜은 1666년 9월 동료 7명과 함께 해변에 있는 배를 타고 일본으로 탈출하였다. 일본 나가사키로 도망하여 1668년 7월에 네덜란드로 귀국하였다. 귀국 후 하멜은 1668년 󰡒1653년 바타비아발 일본행 스페르베르호의 불행한 항해일지󰡓를 써서 발표하였다.

하멜표류기(漂流記)로 알려진 기행문은 그의 억류생활 14년간의 기록으로서 한국의 지리 ·풍속 ·정치 ·군사 ·교육 ·교역 등을 유럽에 소개한 최초의 문헌이다. 원래 목적은 조선에 억류되어 있던 14년의 밀린 임금을 받기위해서 글을 썼지만, 출판사를 통해 발표되면서 이글은 동양의 작은 나라인 조선에 대한 서양인들의 호기심으로 인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결과적으로 하멜표류기가 17세기 조선을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역사적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전시관은 제 1전시관부터 제 4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고,

제 1전시관 : 17세기 네덜란드와 조선이 같은 시기에 일어난 일들을 연표로 비교, 설명하고 있으며 64명 선원 중 생존한 36명 동료들의 이름과 모습이 그려져 있다. 또한 지구본과 2012년 호르크름 시장이 기증한 하멜 보고서의 탁본이 전시되어 있다.

제 2전시관 : 17세기 조선의 시대적 배경, 네덜란드의 시대적 배경, 하멜 일행이 사용한 도구나 그릇, 책, 유품, 좌수영지도, 조선전함 판옥선, 하멜일행이 타고 왔던 스페르베르호 축소형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제 3전시관 : 제주도 표류에서부터 본국인 네덜란드에 돌아가기까지의 과정이 설명되어 있다.

제 4전시관 : 하멜 일행이 그 시대에 보고 느낀 조선사회 -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건축, 종교 등 -을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참고 도서 하멜 아저씨 따라 조선 구경하기- 김경화 저 인터넷-여수문화관광해설사 카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여수시청(거북선여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