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서, 풀에서 꽃이 피어나는 일처럼 신비로운 일이 또 있을까? 꽃이 없는 세상은 또 얼마나 삭막할까!
아침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 아파트 앞 울타리를 타고 소담스런 장미꽃이 무더기를 이루며 피었다. 싱그럽다.
누군가“무슨 꽃을 좋아하세요?”묻는다면 단연 장미꽃이다. 보드라운 겉 꽃잎이 속 꽃잎을 살포시 감싸며 꽃잎 끝을 살짝 젖혀 겹겹이 피어난한 송이 장미의 우아하고 매혹적인자태는 어떤 꽃도 따라갈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장미는 가시가 있기에 자신을 지켜낼 수 있다. 누구도 만만하게 보지 못하는 도도한 아름다움이다. 가시가 있어서 결코 헤프지 않고 허술하지 않다. 자신을 지키려는 고고한 품위를 지녔다. 은은 하면서도 기품 있는 그 상큼한 향기는 고고하기조차 하다..
“누구에게 받아보았나요?” “누구에게 주고 싶은가요?”장미는 은밀히 말을 걸어온다.
5월 아침을 곱게 수놓고 있는 초록 성산공원의 싱그럽고 화려한 장미 꽃길을 걷는다. 열정의 빨강 꽃, 우아한 노랑꽃, 수줍은 소녀 같은 분홍 꽃. 어느 하나를 꼭 찍어 선택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걸을 때마다 내 발걸음이 더 우아해지고 마음조차 한결 경쾌해지고 멈춘 눈길에 위로를 받는다.
5월이 가고 있는 지금의 장미를 보며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길, 그래서 꽃의 거름이 되길 바래본다.
보리밭의 익은 빛깔을 보던 것도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은 것도 퍽이나 오래되어 벌써 옛날 이야기다. 지금 내 안막(眼漠) 깊숙이 탐스럽게 피어오르는 장밋빛 꽃송이가 하늘거린다. (천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