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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최초의 복싱세계챔피언 김기수선수’

  • 기자명 지영희 기자 (wldudgml 1225@hanmail.net)
  • 조회수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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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라는 숫자를 보는 것 만으로도 봄의 생기를 느끼기엔 충분한 것 같다.

비록 신문에도, TV뉴스에도 좋은 소식보다 힘들고 가슴 답답한 소식이 가득하긴 하지만 왠지 3월의 햇살은 달라질꺼라는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은 더 나아질꺼라는 기대를 하게 만드는 것 같다.

오늘은 3월1일이고, 내일은 아이들이 개학을 한다. 방학이 너무 짧다는 둥, 학교가기 싫다는 둥 이런 저런 짜증을 부리는 아이를 데리고 바람도 쐴겸 봄옷 사러 시내로 나갔다.

기분좋게 옷도 사고 맛있는 음료수를 마시며 벽화마을쪽으로 올라갔다. 먼저 올라간 아이가 안내판 앞에서 나에게 손짓을 했다.

‘ 우리나라 최초의 복싱세계챔피언 김기수선수’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난 김기수선수는 1951년 1.4후퇴때 내려와 여수에 정착을 했다. 중학교때 육상부 단거리에서 활약하다 권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1966년 어느 초여름 저녁. 전국민을 TV앞으로 모여들게 만드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WBA 주니어미들급 세계챔피언’ 경기 때문이었다. 이 경기를 준비함에 있어 당시 이탈리아 선수 니노 벤베누티는 경기대전료로 무려 5만5천달러를 요구했다. 1인당 국민총소득이 겨우 131달러에 불과한 때였으니 경기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었으나 당시 정부가 대전료 지불보증을 서 주면서 성사되었다.

장충체육관에서 열리는 이 경기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만 하더라도 무려 6천5백여명, 그리고 TV앞에 모여든 수많은 국민들. 김기수선수가 세계챔피언이 된 그 순간, 국민들은 ‘희망’을 얻었고, 또 누군가는 복싱챔피언의 꿈을 꾸게 되었다고 한다.

작은 아이는 김기수선수에 대해 검색하면서 여수에 이런 선수도 있었네~ 하며 놀라워 했다. 지금은 복싱이 시합보다 체력단련을 위해 배우는 사람이 많아지긴 했지만 아무래도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최초의 복싱 챔피언 김기수선수! 여수의 고소동 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체육관은 비록 지금은 운영되고 있지 않지만 그의 피와 땀은 고스란히 그 곳에 녹아 있는 것 같다.

고소동 벽화골목을 돌아보면서 김기수선수의 흔적을 좀더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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