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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익박사 여수예술인의 장 엄수

  • 기자명 문화예술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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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여수 시민회관 광장서 “여수 음악계 큰별이 졌다”

   ‘여수 음악계의 큰별이 졌다’.
   해산 지정익 박사 영결식이 11일 오전 여수 시민회관 광장에서 ‘여수 예술인의 장’으로 엄수됐다. 지난 9일 새벽 지정익 박사는 가족들의 지극한 정성도, 후학들의 안타까움도 모른 체 유명을 달리했다. 향년 78세.
   1931년 광주 출신으로 광주의대를 나와 안과의사가 된 그는 1964년 여천보건소장으로 부임한 것이 여수와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부임하자 자신의 전공을 살려 무료 개안수술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개안센터를 개설 운영, 장님이라 치부하던 많은 사람들의 눈을 고쳤다.
   특히 한센병 환자들에게는 새로운 생명을 준 여수의 슈바이처로 각인돼 있다. 한센병 환자 진료기관인 율촌 애양원 원장 미국인 의사 타플씨(한국명 도성래)의 요청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네 명의 환자를 개안수술로 빛을 보게 한 것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66년 여수 중앙동에 지정익 안과의원을 개설하고 생활이 어려운 환자와 한센병 환자에 대한 무료 진료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지정익 원장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중학교 때 잡은 바이올린으로 음악계에 발을 디딘 그는 여수 음악발전에 큰 획을 그었다.
   그는 70년 베토벤 탄생 200주년 레코드 감상회를 계기로 71년 여수시립합창단을 창설했고 74년에는 호악회 오케스트라를 구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음악관련 직책을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예총회장, 호악회 회장, 여수 필하모니 단장, 시민회관 건립추진위원을 맡았다.
   90년 회갑 기념 연주, 2004년 네 번째의 바이올린 독주회를 갖고 올 4월 다섯 번째 연주회를 갖기로 했으나 이를 이루지 못하고 떠났다.
   인술로 음악으로 일생을 보낸 그는 여수시민의 상, 전남음악상, 예총과 한국음악협회, 새마을중앙회장의 공로패, 감사패 등이 발자취를 짐작케 한다.
   고 지정익 박사는 여수를 사랑하고 음악을 즐기며 그늘진 곳에 빛을 주고 간 큰 별이다.

*** 자료제공 : 문화예술과 690-7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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