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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이순신의 '효' 정신을 기리다

  • 기자명 이기자 기자 (leegija20@hanmail.net)
  • 조회수 1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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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마을 이충무공 어머니 사시던 곳을 다녀와서

요즘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지금의 상황이 더없이 좋아보이고 부러울 때 흔히 쓰는 표현이다. 정말 나라를 구한 이순신의 후생 인물이 있다면 그는 누구이고 과연 어떤 현생의 삶을 살아갈까! 문득 궁금해진다.

<난중일기> 속 이순신을 보면 인간적 측은함이 너무나 많은 사람이다. 나라 걱정, 어머니 걱정, 부하 걱정, 아들 걱정 온통 근심 걱정으로 일관된 삶이다. 하루라도 마음 편히 지낸 날이 없음을 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조선의 삼강오륜을 철저하게 따른 대표적 인물이 이순신이 아닌가 싶다. 군위신강, 군신유의의 측면이 아니라 부위자강, 부자유친을 몸소 실천한 이순신을 생각한다.

 

그의 정신을 만나고 싶어 여수 송현마을에 있는 이충무공 어머니 사시던 곳을 찾았다. 아파트촌으로 둘러싸여 한참을 헤매다 결국 도착한 기거지의 첫 느낌은 나름 나쁘지 않았다. 초입에서 예쁘게 맞아준 꽃양귀비와 구름 속에 살짝 숨은 햇빛, 선선한 바람, 오래된 듯한 몇 그루의 고목들(회화나무, 팽나무)이 있어 아직 옛스러움을 잃지 않게 도와 주었다. 2015년에 새로 지은 한옥 두 채가 새 것 티를 너무 내고 있다는 점만 빼곤 느낌 참 좋다! 한옥 마루에 앉아 주변 정취를 보고 있는데 자연스럽게 다가와 이순신과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유적지 조성에 얽힌 사연 등 관리인 주선동 님의 친절한 설명이 곁들여지니 더 좋다.

이곳은 이순신의 어머니와 가족들이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해인 1593년 부터 약 5년 동안 살았던 곳이다. 효성이 지극했던 이순신은 충청도 아산에 살던 가족들과 어머니를 여기 송현마을 정대수의 집에 모셨다. 아침 저녁으로 찾아뵙고 전쟁에 나갈 때마다 문안을 드리는 등 지극정성으로 어머니를 모셨던 곳이다.

<난중일기> 곳곳에 어머니를 기리는 마음을 적고 있다. '초5일 맑다. 공문을 처리하였다. 봉과 울이 들어와서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고 전했다. 매우 다행이었다. 밤새 온갖 생각이 떠올라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1595.1.5) '13일 맑다. 어머니를 모시고 옆에 앉아 아침 진지를 올리니 대단히 즐거워 하시는 빛이었다. 늦게 하직 인사를 드리고 본영으로 돌아왔다.'(1596.8.13) '초7일 맑고 따스했다. 아침 일찍 어머니를 위해 수연(오래 살기를 축하하는 잔치)을 베풀면서 하루 내내 매우 즐겁게 보냈다. 매우 다행스러웠다. 남해 현령은 선대의 제삿날이어서 먼저 돌아갔다.'(1596.10.7) 1597년 83세의 어머니를, 다시 아산으로 돌아가는 배에서 여의게 되고 당시 이순신은 원균과 간신배의 모략에 의해 백의종군으로 전쟁에 나가는 중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의 초상을 치룬 후, 전쟁에 나아가는 그의 심정이 얼마나 참담했을까!

예전 건물은 없어지고 비록 신축된 새 건물이긴 하나 옛 자리에 유허비가 세워져 있어 타임머신을 타고 상상 속 그 시대로 돌아가 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일 듯 하다. 진남관이 있는 전라좌수영이 충을 실천한 곳이라면 이곳은 효를 실천한 곳으로 이순신의 '효' 정신을 깊이 새겨볼 수 있는 곳이다.

 

빨간 효 우체통이 눈에 들어온다. 부모님께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으면 여수시에서 가정으로 배달을 해준다. 생각으로 머물지 않고 표현할 수 있는 기회이니 이또한 이용하면 참 좋겠다.

이순신 어머니 사시던 곳 여수시 신월로 195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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