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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오포대를 아시나요

  • 기자명 이기자 기자 (leegija20@hanmail.net)
  • 조회수 4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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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포대가 시계탑만의 기능을 했을까요?

시계가 귀한 시절 오시(오전 12시~오후 1시)에 포를 쏘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 오포대다. 오포는 포탄 없이 화약만 넣고 포를 쏘아 소리로 정오를 알리는 방식이었다.

대부분 오포대를 일제강점기에 시행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미 조선시대부터 존재했다. 조선시대 포를 쏘아 정오를 알리던 방식에서 일제강점기에는 사이렌으로 바뀌었다. 1941년 태평양전쟁으로 전황이 확대되면서 전국적으로 거의 모든 지역에 오포대가 설치되어 정오뿐만이 아니라 방공훈련과 비상시에도 활용했다.

일제강점기의 오포대의 형태는 여수 오포대가 그 원형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곳 중의 하나이다. 오포대는 고소대에서 멀지 않은 인근에 있다. 고소대에서 기상청으로 향하는 좁다란 골목길인 고소6길을 따라 3분 정도 오르면 여수기상청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 맞은 편에 공터가 있고 그곳에 오포대가 붉은 벽돌로 우뚝 서 있다.

오포대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원형 건물이다. 원형 건물 안에서 철재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옥탑의 사각형 건물이 있다. 옥탑 건물은 사방이 창문으로 이루어져 있어 여수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철재 계단은 부식되어 지금은 철거되고 없다. 여수 시가지와 진남관과 그 주변의 조망, 장군도와 돌산도 사이의 앞바다의 조망, 돌산도와 남해군 사이의 바다 조망, 마래산과 여수박람회장의 조망 등 오포대 정상의 망대를 통해 사방을 조망할 수 있다. 특히 이 조망권은 일제강점기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최적의 조망권이라는 사실이다.

오포대 주변에서 오랫동안 산 사람들은 이곳 오포대를 망대라 불렀고 고소대는 대첩비각으로 불렀다고 한다. 현재 오포대가 고소대라는 주장도 있다. 오포대는 망대와 이를 관리하는 부속 건물이 함께 지어졌다. 오포대 사진의 앞면 삼각형 형태가 있는데 이것이 부속 건물과 이어진 부분이다. 1980년대 초반까지 부속 건물은 여수시 민방위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이후 방치되면서 태풍 등의 위험에 노출되어 부속 건물을 철거하게 되었다. 따라서 오포대의 목적이 정오에 사이렌을 울리는 시계탑만의 기능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견고하게 지어졌다. 다른 지역의 경우 오포대가 대부분 철탑으로 만들어졌으며 시내 중심지에 있는 것과 비교하면 여수 오포대는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또한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여수를 말한다>의 저자 주철희 박사는 책에 오포대에 대해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오포대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에 위치하고 있었고 충분히 타당성이 있지만 1970년대 초반까지 이곳에서 정오에 사이렌을 울렸고 민방위 훈련 때에도 사이렌을 울리면서 자연스럽게 시계탑만의 기능을 한 오포대로 인식하게 된 것 같다고 한다.

지난 5월30일 오포대 공원 준공식을 가졌다. 여수의 산 아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오포대. 역사의 아픈 현장으로 생생하게 기억해야할 오포대가 여수 밤바다 화려한 조명에 싸여 유적지가 아닌 관광지로 전락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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