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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저수지 벽골제, 초라하지 않을까!

  • 기자명 이기자 기자 (leegija20@hanmail.net)
  • 조회수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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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는 예로부터 사람의 생활과 밀착된 중요한 시설로 다가온다. 농경생활을 주로 했던 우리 민족은 벼농사를 위한 수리시설로 저수지가 중요한 기능을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대 저수지는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포교리에서 월성리에 이르기까지 제방이 남아있는 벽골제 저수지다. 제방과 함께 부수 시설로 제방의 남단 수문지였던 경장거와 북단 수문지였던 장생거 그리고 중앙 수문지였던 거대한 석주들이 지금도 우뚝 서 있다.

벽골제는 우리나라 최대의 고대 저수지로 백제의 11대 비류왕 27년(330)에 축조된 것으로 당시 토목기술이 고도로 발달되었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저수지'라는 단어는 호수보다 소박하게 다가온다. 휴양지 개념을 도입한 현대의 호수나 댐의 규모에 익숙해져 있어 벽골제 저수지가 작고 초라할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었다.

도착해서 본 벽골제의 첫 느낌은 기대 이상이다. 덩그러니 저수지만 있을 거라는 생각과 달리 '벽골제 마실'이라는 타이틀로 벽골제 제방과 조화롭게 전시 공간을 배치하고 맞춤형 체험 프로그램을 적절하게 개발해서 단조로움을 해소했다.

전시 공간은 벽골제 농경박물관, 농경사주제관 및 체험관, 벽천미술관, 아리랑문학관, 아리랑문학마을까지 넓은 대지에 다양한 공간을 배치했다.

벽골제 맞춤형 체험프로그램으로 민속놀이, 명인학당, 짚풀공예, 전통가옥과 주막, 찻집 그리고 창작스튜디오에서 서예, 한국화, 도자기, 목공예, 천연염색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루어지고 있다.

벽골제 제방 너머로 김제평야의 지평선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어 방문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저수지라는 벽골제의 의미를 다양한 공간과 체험 프로그램으로 접목한 김제시의 기획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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