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궁궐 마당에서 조선을 걷다.
워크숍의 시작이 청와대라니, 며칠 전부터 들뜬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다. 모임 장소는 경복궁 동편 주차장. 일찍 도착하여 경복궁을 둘러보는데 때마침 수문장 교대식을 볼 수 있었다. 많은 외국인들이 모여들었고, 북소리와 함께 가루눈이 내려 쌓인 길 위로 교대 수문군이 들어온다. 하얀 눈을 맞으며 근엄한 표정의 수문군이 취타대의 울림과 함께 묘한 신비감을 주었다. 수문장이 호령하면 광화문 안과 밖에 수문군이 서로 이동하여 자리를 바꾸고 퇴장한다. 바로 옆에서 열심히 촬영하던 외국인이 연신 “amazing”을 외쳤다. 궁궐을 지키는 수문군의 교대식이 이토록 엄숙하니, 궁궐 안에 살고 있던 임금님의 위엄을 감히 상상할 수 있었다. 지나가는 수문군의 표정을 보니 그들은 벌써 600여년전 조선의 사람이었다.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 셔틀버스 안에서 경호원에 의한 신분 확인 절차를 거쳤고 입구에서는 소지품 검사대를 거쳐 가방 속에 들어 있는 물도 마셔봐야 했다. 청와대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가 따로 지정되어 있고 경찰이나 경호원을 찍어서는 안됐다. 기자단을 이끌며 안내해준 해설사는 단정한 외모의 여성 경찰관이었는데 청와대 곳곳의 역사와 에피소드를 잘 전달해주었다. 임금님이 농사를 지었다는 녹지원 앞에서 만난 청와대 비서관실의 오영규 뉴미디어비서관은 “정부가 발표하는 정책을 생활 속에서 체험하여 국민에게 잘 전달되는 기사를 써달라.”고 주문했다. 본격적인 기자단 워크숍은 경복궁 별관에 마련된 박물관 교육관에서 있었다. 청와대 관람 이후 많은 수가 빠진 후였지만 ‘교육과 강의’를 좋아하는 나로선 더할 수 없이 좋은 시간이었다. 남들은 진부한 교육이라 단정 지은 것에도 캐낼 수 있는 진주는 숨어있었으니 말이다.
韓紙는 白紙가 아니라 百紙다.
청와대 방문 후, 아직까지 기분이 좋은 것은 아마도 내 손안에 남은 기념품 때문이다. 누비 지갑과 한지로 만든 노트를 받았는데, 한지는 지난 여수 박람회 직지홍보관에서 만나 본적 있어 친근하다. 당시 한지로 직지를 찍어내던 운영자분이 ‘한지는 1000년을 갑니다.’라고 말해 큰 충격을 받았었다. 어떻게 종이가 천년을 갈 수 있지?
한 장의 한지를 만들기 위해 아흔아홉 번 손이 가고 마지막으로 그 종이를 사용하는 사람의 손길이 백 번째인 종이. 그래서 일백 번의 백(百)자를 써서 백지(百紙)라 한다. '온지’란 100을 뜻하는 순우리말 ‘온’과 종이 ‘지(紙)‘의 합성어다. 닥나무의 섬유가 서로 얼키고 설켜서 화살도 막을 수 있게 질겨져 갑옷의 소재로도 사용되었다니, 그 오랜 역사가 눈물겹다.
다른 기자들은 선물 받은 한지노트가 아까워 선뜻 쓰지 못하고 있다는데, 필자는 이 노트에 직접 만나고 취재한 인물의 사인을 받으려고 한다. 천년을 가는 한지에 쓰여진 이름과 함께 이 나라가 흔들리지 않고 발전해가길 기도하며 조용히 2016년을 맞이하겠다.
[한지는 1000년을 갑니다.] - ‘거북선여수’ 2012년 07월 20일
http://news.yeosu.go.kr/news/articleView.html?idxno=78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