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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추억 흐르는 몽마르뜨 언덕 같다

  • 기자명 한선주 기자 (dutnakstp@hanmail.net)
  • 조회수 1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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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고소동 벽화 골목

여수에 거북선 여수’ 소식지가  있다면, 전라남도에는 전남새뜸’( 새뜸은 좋은 소식이란 우리말) 이 있다. 다음은 전남새뜸 115일자 매력전남에 실린 기사 여수 고소동 천사 벽화 골목을 소개한다.

전남새뜸 11월 5일자

 

옛 추억 흐르는 몽마르뜨 언덕 같다

-여수 고소동 벽화 골목

  여수시 고소동 벽화마을이다. 아름다운 여수 밤바다와 고지대의 장점을 살려 벽화거리를 조성한 곳이다. 골목의 길이가 1004m. ‘천사 벽화 골목길로 이름 붙었다. 비좁은 골목길이 이리저리 구부러져 있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이 골목의 담벼락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림의 소재가 다양하다. 꽃이 피고 새들이 날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모습도 보인다. 이순신 장군이 섬과 뭍을 연락하는 통신수단으로 쓴 갖가지 연도 그려져 있다. 제법 솜씨를 부린 것도 있지만, 아이들의 낙서 같은 그림이 많다. 고양이가 죽으면 정성스레 묻어줄 정도로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개장골의 전설을 담은 그림도 있다. 정겨움이 가득 배어있다지난 2012년 여수엑스포를 앞두고 주민자치위원회가 앞장서 꾸몄다. 주민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성금 모금으로 비용 마련을 시작한 점도 애틋하다. 골목길 담장의 그림을 보며 쉬엄쉬엄 걷기에 좋다. 여수 앞바다를 내려다보며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갤러리도 있다. 건물의 옥상을 활용한 전망 쉼터도 만들어 놓았다

고소동은 여수의 대표적인 산동네다. 북서쪽으로 나지막한 종산이 있고, 남쪽은 바다와 접해있다. 1200여 가구 3000여 명이 살고 있다. 주택은 대부분 슬레이트와 슬라브 구조의 단독이다. 적산가옥도 섞여 있다. 7080년대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세월의 더께는 담쟁이 넝쿨이 기어오른 담벼락에서도 묻어난다

골목길 빈 터에는 손바닥만 한 텃밭이 만들어져 있다. 텃밭에는 남새가 무성하다. 골목길은 조용하다. 길손의 발걸음을 경계하는 개 짖는 소리와 뱃고동 소리가 가끔 들려올 뿐이다. 마을에서 내려다보이는 돌산대교와 거북선대교가 가로질러 놓인 바다 풍광도 예쁘다. 옛 모습 그대로의 추억이 흐르는 몽마르뜨 언덕 같다.

고소동은 임진왜란을 전후해 생겨났다. 포루였던 고소대(姑蘇臺)가 창설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고소대는 이순신 장군이 수군의 훈련을 독려하고 군령을 내린 곳이다. 비각 안에 3기의 비석이 서 있다. 통제이공수군대첩비(統制李公水軍大捷碑)와 타루비(墮淚碑)가 있다. 대첩비의 건립 경위 등을 적어놓은 동령소갈비(東嶺小喝碑)도 있다.

타루비에는 당시 수군들의 눈물이 배어 있다. 타루(墮淚)는 비석을 바라보면 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중국의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순신 장군과 함께 싸웠던 수군들이 주머니를 털어서 1603년에 세웠다.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최초의 비석이다. 통제이공수군대첩비는 1620년에 완공된 조정이 주도해서 세운 첫 비석이다. 길이 305, 124로 국내에서 가장 큰 대첩비다.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국도 순천 나들목에서 여수 방면으로 17번 국도를 타고 여수로 간다. 여수 도심을 관통하는 좌수영로를 타고 버스터미널을 거쳐 서교동 로터리를 지나 진남관에 이른다. 진남관 건너편이 고소동 천사 벽화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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