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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 다시보는 난중일기

  • 기자명 김병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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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를 중심으로

김병호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1. 북봉연대(北峰烟臺)
<임진 2월> 4일(을미) : 맑음
동헌에 나가서 공무를 마치고 북봉 종고산의 북봉연대 쌓는 곳에 올라가보니 축대 쌓는 위치가 적당하여 절대로 무너질리가 없었다. 이봉수가 부지런히 일한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구경하다가 해질 무렵에 내려와서 해자 구덩이를 살펴보았다.

2. 석보창(石堡倉)
<임진 4월> 18일(정미) : 아침에 흐림
저녁에 순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병방이 석보창에  군사를 인솔하고 오지 않으므로 붙잡아 가두었다.

석보창은 여수시 여천동 868번지 일대에 있는 여수석보성(석창)로서 2012년 6월 국가사적 제523호로 지적되었다.
‘여수석보’는 조선시대(15세기 중반)에 널리 활용되었던 산지나 평산(平山)지역이 아닌 평지에 축조된 방형의 성곽시설로 2차례의 발굴조사와 학술대회 등을 통하여 유적의 성격이 확인됐습니다. 이곳은 순천도호부-전라좌수영 등 육지부와 해안부를 잇는 요충지에 입지하여 역사적·지리적으로 중요한 유적으로 네 모서리를 각이 없는 방형으로 수축한 조선시대 평지성으로서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 석보(石堡)에는 동·서·남문 등 3개소의 성문이 있었고, 성 밖에는 성벽을 따라 해자(垓子)를 설치했습니다. 성벽은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지는 않으나, 성곽전체의 규모와 형태를 알 수 있을 상태로 남아있습니다. 성벽에는 ‘구례시면(求禮始面)’이란 명문이 확인되어 인근 군현에서 분담하여 축성역(築城役)을 담당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평면 형태와 부대시설의 배치, 축성기법에서 나타나는 여수석보의 주요 특징들은 15세기 중반의 성곽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사적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처음에는 군사적인 방어 위주의 석보(石堡)에서 출발하여 점차 관청용 물자비축의 창고, 장시 기능으로 활용되는 등 다양한 유적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어 더욱 주목되는 유적이다.
또한, 체성부(體城部)와 해자의 잔존상태가 양호할 뿐만 아니라, 15세기 중반 평지부에 방형으로 축조된 육군 진보성(鎭堡城)으로서 전 구간에 걸쳐 첫째 단을 세워쌓기한 점, 대형의 지대석을 사용한 점 등은 다른 성곽에서는 찾기 힘든 시대적인 한정성·희소성을 지닌 귀중한 유적이다.

김병호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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