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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그 날의 함성이 울려 퍼진다
독립…그 날의 함성이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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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2.26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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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지역 독립유공자를 아십니까?>>


삼월의 함성이 메아리친다. 일제치하, 우리지역에서도 수 많은 독립유공자들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국권회복을 위해 민족자존의 가치를 드높였던 분들을 찾기 위해 지자체 차원에서 많은 노력을 펴고 있지만, 지금까지 마흔 분의 독립유공자만이 그 공적을 인정받았을 뿐 아직도 많은 분들이 당신의 업적에 대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제95주년 3·1절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지역 독립유공자 40인의 공직을 되짚어본다.


어린 나이에 순국한 주재년 열사

주재년 열사(1929∼1944)는 지난 1943년, 14살의 나이로 여수시 돌산읍 금성리에서 율림리로 가는 목화밭 담장 밑 큰 돌 4개에 “조선일본별국, 일본놈 져라, 조선만세, 조선지광”이라고 새긴 혐의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1944년 1월경 징역 8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났으나, 복역 도중 심한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같은해 4월 8일 순국했다.

주 열사의 항일운동은 주민들 사이에서 입으로 전해지다 그의 후손들이 관련 자료를 찾아내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시는 지난 2006년 4월 주재년 열사에 대해 정부포상을 신청해 같은 해 8월 독립유공자로 추서됐고,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이 같은 주재년 열사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여수시가 돌산읍 금성리 작금마을 주재년 열사 생가터에 마련한 것이 주재년 열사 기념관이다.

지난해 5월 준공한 기념관은 본동 1동과 대문간 1동, 비각 1동 등으로 지어졌으며, 본동에 돌산지역 독립유공자 세 분(노병주, 오우홍, 김인식)과 주재년 열사의 공적내용을 전시했다. 또한, 비각안에는 돌산지역 항일운동사 비문과 주재년 열사 공적 내용, 주재년 열사가 기록한 글을 재현한 돌 비석 4개가 전시됐다.


후손 없는 유공자 다섯 분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훈장전시

여수시청 현관 옆에는 여수 출신으로 후손이 없는 유공자 다섯 분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훈장전시대가 설치돼 있다. 그 다섯 분은 김성택, 이병현, 윤형숙, 이형영, 정기채 열사 등이다.

■ 김성택 [1898.3.1~1944.3.2] 

여수시 삼산면 초도 출생.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독립운동가.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단, 광복군총영 등에서 항일운동을 하였다. 기관 폭파를 계획하던 중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으며 사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 이병현 [1880~미상] 

여수시 삼산면 초도 출생. 전남 완도군 청산도와 여서도 등에서 ‘완도삼림문제’와 어민들의 경제적 착취를 위한 ‘어업법’ 시행으로 일제의 경제적 침탈이 심해지자 어민들의 생계위협에 맞서 의병활동 및 의병자금을 확보하다가 체포, 광주지방재판소 목포지부 재판장에서 징역 2년6개월 형을 받았다.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 윤형숙[1900.9.13~1950.9.28] 

여수시 화양면 창무리 출생. 1919년 3월 10일 광주(光州)에서 거행된 독립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일본 헌병에 의하여 왼팔이 잘리는 중상을 입었다. 팔이 잘린 그녀는 잠시 쓰러졌다 일어나 오른팔로 태극기를 다시 들고 독립만세를 더욱 크게 외쳤고, 이 광경을 목격한 군중이 더욱 격렬하게 항거하였다. 2004년 건국포장이 추서됐다.

■ 이형영 [1896.7.4~1923.2.5]

여수시 서정 출생. 1919년 3월 1일 경성공업전문학교 부속 전습소 1학년에 재학할 때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2005년 건국포장이 추서됐다.

■ 정기채 [1880~1909.8.30]

여수시 율촌면 출신의 한말의 항일의병. 한일신협약이 체결되자 여수·순천·광양 등지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고, 1909년 일본헌병대의 총에 순국하였다. 2003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여수지역 독립유공자, 또 어떤 분들이 있나?

현재 여수지역 독립유공자는 최근 2011년 추서된 김초암 선생이 있다.

■ 김초암 선생은 일찍부터 확고한 민족의식을 갖고 있던 청년이었다.

그는 1942년 5월 30일 다니던 공장 기숙사 사감이 징병제도에 대한 감상문을 쓰라고 하자 화춘대남 이라는 가명으로 “아! 하늘이시어 우리 조선 민족에게 무슨 죄가 있기에 일본과 합병된 이래 30년간 대화민족(일본)은 조선 청년의 목숨을 요구하고 있는가? 만약 자신이 징병검사에 합격하여 징병된다면 전장에서 대화민족(일본군)을 한 사람씩 사살 할 것이다.” 라고 작성,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징병제도를 비판했다.

이로 인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10월형의 선고를 받고 복역했다.

● 이밖에 임종호, 이성순, 조용옥, 김원석, 박우섭 애국지사 등 다섯 분에 대해서는 현재 포상 추진중이다.

이 같이 많은 독립유공자들이 최근 들어서야 그 공을 인정받는 등 일제치하 이 지역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이 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자랑스런 여수지역 독립유공자 40인

임병찬(林炳瓚), 강진원(姜震遠), 정기채(鄭基采), 김성택(金成澤), 이병현(李炳鉉), 김백평(金栢枰), 이형영(李亨永), 윤자환(尹滋換), 김철주(金哲柱), 김순배(金順培), 정두범(鄭斗凡), 윤형숙(尹亨淑), 박오기(朴伍基), 배세동(裵世彤), 유봉승(柳琫承), 유봉목(兪鳳穆), 이선우(李善雨), 문  균(文  均), 노병주(盧秉柱), 곽찬신(郭贊信), 김형석(金炯錫), 김용환(金龍煥), 오우홍(吳宇鴻), 김인식(金仁植), 장평완(張平完), 이창희(李昌熙), 윤경현(尹炅鉉), 오놀보(吳㐗甫), 정학조(鄭學朝), 백인열(白仁烈), 정보한(鄭輔漢), 진자미(秦者味), 곽재석(郭在石), 최완규(崔完奎), 손양원(孫良源), 윤  장(尹  莊), 김충홍(金忠弘), 김초암(金初岩), 주재년(朱在年), 이상문(李相文) 열사 등 40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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