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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난중일기 여수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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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호
  • 승인 2014.02.26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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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1592년) 정월10일(신미) : 하루 종일 비

새로 부임한 방답의 첨사가 들어왔다


1. 방답첨사 이순신

당시 방답 첨사는 이순신이었는데 충무공 이순신이 아니라 무의공 이순신이다. 무의공(武毅公) 이순신(李純信)은 경기도 시흥 출신으로 조선 중기의 왕족으로 무장이자 유학자였다.

임진왜란 때에 활동하던 장수로 그의 상관이기도 했던 충무공 이순신(李舜臣)과 등림수 이순신(李舜臣) 등과의 구별된다.

자가 입부(立夫)였기 때문에 입부 이순신으로도 불린다. 양녕대군의 후손으로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의주 판관, 혜산진 첨절제사로 근무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의 휘하에서 중위장·전부장으로 옥포·합포·적진포·당포·한산도·부산포 해전 등에서 활약하였고, 노량해전에서  충무공 이순신이 전사하자 일시적으로 그의 역할을 대행하기도 했다.

또한 임진왜란 때 전사한 이억기의 친척이기도 하며, 학봉 김성일(金誠一)의 문하생이기도 하다.


2. 방답진(防踏鎭=防踏僉節制使鎭)

방답진은 돌산읍 군내리에 있었다. 방답진은 외적이 침투하는 요충지이기 때문에 화양면 용주리에 있던 돌산포만호진을 혁파하고 1523년(중종 18) 이곳에 진을 설치하고 첨사를 두었는데, 1895년에 폐진 될 때까지 약 370여 년간 존속하였다.

방답진성의 규모는 둘레 661m, 높이 3.9m이며, 사다리꼴 형태이다. 여첩(女堞) 205개소·창고 20칸·연못 1개소·성문 3개소가 있었다.

서문 밖으로는 조그만 만(灣)이 있어 적의 침입으로부터 전선을 보호하거나 즉시 출동시킬 수 있도록 깊게 판 굴강(掘江)이 있다.

김병호(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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